제 2화 사라진 사진

 

 

깊고 푸른 어둠이 도시를 감싸 안은 밤, 거실 한 켠에 놓인 낡은 스탠드만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빛 아래, 은주는 오래된 앨범 한 권을 조심스럽게 펼쳐 들었다. 앨범의 낡은 표지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고, 은주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앨범 속에는 1980년대, 흑백 사진 속 젊은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풋풋한 미소를 머금은 두 사람은 앳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고, 은주는 그들의 젊은 시절을 상상하며 미소 지었다. 어린 시절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듯했다.

은주는 앨범 속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기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갔다. 낡은 흑백 사진들은 빛바랜 색감으로 그 시절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운동회 날 찍은 가족사진, 여름휴가 때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찍은 사진 등 소중한 추억들이 은주의 마음속에 되살아났다. 그러다 문득, 한 장의 사진에서 은주의 시선이 강렬하게 멈춰 섰다.

사진 속에는 엄마, 아빠, 그리고 낯선 여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여자는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밝게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픔이 깃든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은주는 여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앨범 속 다른 사진들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낯선 여자의 존재는 은주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이 사람은 누구지?" 은주는 혼잣말처럼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마치 오래된 수수께끼를 마주한 듯한 기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은주는 사진 속 여자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아침 식사 시간, 은주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사진을 꺼내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엄마, 이 사진 기억나? 이 여자는 누구야?" 은주의 질문에 엄마는 사진을 보자마자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젓가락을 들고 있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듯했다. "이 사진... 어디서 났니?" 엄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딱딱하고 차갑게 느껴졌다. 은주는 순간적으로 긴장감을 느꼈다.

"서랍 정리하다가 찾았어. 엄마 친구야?" 은주의 질문에 엄마는 한참 동안 망설이는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침묵이 흐르는 식탁 위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침내 엄마는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냥... 옛날에 잠깐 알았던 사람이야. 지금은 연락 안 해." 엄마의 대답은 어딘가 어색하고 석연치 않았다. 은주는 엄마가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엄마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고,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은주는 사진 속 여자를 반드시 찾아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여자가 과거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엄마가 그토록 숨기려고 하는 진실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 은주는 먼저 1980년대에 영업했던 사진관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혹시 사진관 주인이 여자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서였다. 1980년대는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특별한 날이면 사진관을 찾아 사진을 찍곤 했다. 은주는 혹시라도 사진관에 여자의 사진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며칠 뒤, 은주는 수소문 끝에 어렵게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묵묵히 한 자리를 지켜온 낡은 사진관을 찾아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낡은 간판과 빛바랜 사진들이 사진관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은주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사진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은주는 사진관 주인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여자를 아는지 간절하게 물었다. 사진관 주인은 돋보기안경을 쓰고 한참 동안 사진을 들여다보더니,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 여자분은... 예전에 이 근처 다방에서 일했던 미스 김이라고 했던 것 같아."

미스 김. 은주는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낯선 이름이 은주의 뇌리 속을 파고들었다. 은주는 사진관 주인에게 미스 김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고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사진관 주인은 더 이상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은주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사진관을 나섰다. 하지만 미스 김이라는 이름은 은주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미스 김... 은주는 1980년대에 성행했던 다방을 중심으로 미스 김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월이 너무 오래 흘러 미스 김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다방은 문을 닫았고, 남아있는 다방들도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은주는 점점 지쳐갔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은주는 우연히 낡고 허름한 모습의 오래된 다방에서 일하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노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었고, 눈빛은 어딘가 슬픔에 잠겨 있었다.

노인은 은주에게 미스 김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스 김은... 착하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였지. 얼굴도 예뻤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췄어. 다방의 인기스타였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아무도 이유를 몰랐지. 다들 안타까워했었어." 노인의 회상에 젖은 듯한 말에 은주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미스 김은 왜 갑자기 사라진 걸까? 그리고 엄마는 왜 그토록 미스 김에 대해 숨기고 있는 걸까? 은주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때, 낡은 다방의 문이 조용히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은주를 빤히 쳐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혹시... 김민지 씨를 찾으시나요?" 은주는 갑작스러운 남자의 등장에 경계심을 느끼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남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은주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미스 김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김민지의 동생입니다."

 

 

 

다음 화 예고: 미스 김의 동생은 은주에게 미스 김의 과거와 관련된 충격적인 진실을 털어놓는다. 은주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혼란스러워하지만,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더욱 깊숙이 사건 속으로 빠져든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함께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제 1화 어둠 속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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